연구원소식
전문가 회의 결과 (19.07 이후)
알제리 대선 전후 정세변화와 파워엘리트 구조
- 작성일2020/09/02
- 분류중동분과
- 조회수42,535
I. 개 요
1. 주제: 알제리 대선 전후 정세변화와 파워엘리트 구조
2. 일시 : 2020. 8. 4.(15:00~17:00)
3. 장소 : KIEP 원내 회의실
4. 발표자 : 임기대 (부산외국어대학교, 교수)
5. 참석자
- 원외 참석자
성 명 | 소 속 | 직 책 | 참석사유 및 역할 | |
[위 촉] | ||||
1 | 남옥정 | 단국대 GCC국가연구소 | 연구교수 | 토론 |
2 | 엄익란 | 단국대 자유교양학부 | 조교수 | 토론 |
3 | 김은비 | 국방대학교 | 교수 | 토론 |
4 | 김중관 | 동국대 사회과학연구원 | 교수 | 토론 |
5 | 박현도 |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| HK연구교수 | 토론 |
6 | 성일광 | 건국대 중동연구소 | 연구원 | 토론 |
7 | 장철복 | SC은행 | 상무 | 토론 |
8 | 장지향 |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연구센터 | 센터장 | 토론 |
9 | 최영철 | 서울장신대 | 교수 | 토론 |
[비위촉] | ||||
10 | 임기대 | 부산외국어대학교 | 교수 | 발표 |
- KIEP 참석자
성 명 | 소 속 | 직 책 | 참석사유 및 역할 | |
1 | 이권형 | 신남방경제실 | 실장 | 토론 |
2 | 손성현 | 신남방경제실 | 전문연구원 | 토론 |
3 | 장윤희 | 신남방경제실 | 전문연구원 | 토론 |
4 | 유광호 | 신남방경제실 | 전문연구원 | 토론 |
II. 주요 논의 사항
1) 발제내용
□ 모로코 출신인 부테플리카는 1999년 대통령에 당선되어 약 20여 년간 장기통치를 한 후 2019년에 하야를 선언하고 물러남.
- 1937년 모로코 우즈다(Oujda)에서 출생한 압델라지즈 부테플리카(Abdellaziz Bouteflika)는 알제리 독립 이후 세계 최연소 외무부 장관으로 발탁되어 외무부 장관 시절 제 3세계 비동맹 운동을 주도한 바 있음.
- 1999년 이슬람 원리주의 집단을 제압한 군이 당시 동부지역 바트나(Batna) 출신의 대통령인 제루알(Liamine Zeroual, 1941~)을 사임시켰음. 이후 부테플리카는 군의 지원에 힘입어 대통령에 당선되었음.
- 그는 당선 이후 테러 종식, 반정부세력을 포용하는 화합 시도, 2000년대 고유가로 인한 경제발전 등으로 지지를 얻어 2004년 재선에 성공하였음.
- 부테플리카 대통령은 2013년 중병으로 뒷선으로 물러나 ‘보이지 않는 체제’(facialless regime)를 시작하였으나 장기독재에 대한 반대여론이 확산되면서 2019년 국민의 요구를 받아들여 하야함.
□ 부테플리카의 대통령은 인재 등용 방식을 변화해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고자 하였음.
- 부테플리카 대통령은 군과 정보부, 민족해방전선, 독립운동 참가자, 틀렘센家, 연정 세력 등을 주요 정치 요직에 앉혔음.
- 부테플리카 대통령은 군의 후광으로 당선됐지만 군의 권력 독점을 막기 위해 아메드 우야히야(Ahmed Ouyahia, 1952~)와 아부제라 솔타니(Aboudjerra Soltani, 1954~)로 대변되는 연정 체제를 구축하였음.
* 아메드 우야히야는 연정 세력인 민족민주연합(RND)의 핵심인물이며, 아부제라 솔타니는 평화를 위한 사회운동(MSP)을 대표하는 인물로 알려짐.
- 또한 군을 견제하면서 연정세력을 끌어들여 베르베르, 이슬람세력의 불만을 동시에 잠재우고자 함.
- 특히 전체 30여 개 장관 중 적게는 10개, 많게는 15개를 틀렘센 출신에 배분하였음.
- 이 과정에서 부테플리카 이전의 집권세력인 BTS(Batna, Tebessa, Souk Ahras)와 틀렘센 가의 경쟁적인 권력 쟁탈이 본격화되었음.
- 부테플리카 대통령이 장기집권하면서 그가 임명한 주요 인물의 부정부패가 지속되었음.
□ 알제리 국민은 부테플리카 대통령의 장기집권 야욕과 그가 주요 요직에 앉힌 인물들의 부정부패에 반대하여 2019년 이후 ‘히락(Hirak)’으로 알려진 국민 저항 운동을 지속해왔음.
- 2019년 2월 10일 부테플리카 대통령이 치료차 머물던 스위스에서 5선 출마 선언을 하자 같은 달 16일에 케라타(Kherrata, 수도 알제 동쪽으로 300km 지점) 지역에서 처음으로 5선 반대 평화 집회가 개최되었음.
- 2월 22일에는 수만 명의 시민이 전국 대도시와 수도 알제에서 시위를 시작하였으며, 이때 ‘히락(movement)’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함.
- 시위가 지속되자 알제리군은 ‘히락’과 같은 가치를 공유한다고 밝히며 시위대를 달랬고 부테플리카 대통령도 5선 도전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함.
- 이후 시위대가 요구한 대통령 선거 연기가 받아들여지고 부패한 대통령 측근에 대한 처벌도 이루어졌음.
- 새로 당선된 압델마지드 테분(Abdelmadjid Tebboune) 대통령은 향후 헌법 개정, 정치 체제 개편, 부패 추방, 사회 개혁 등을 약속함.
□ 알제리 권력 구조 개혁, 적폐 세력 청산과 정치 체제 전환은 헌법 개정이 어느 정도로 이뤄질지에 따라 달라질 전망임.
- 대통령의 6년 단임제, 국민 안위(노동, 사회 분야), 사법부와 행정부의 역할 등과 관련한 조문을 중심으로 기존 헌법의 63% 정도가 수정될 것으로 예상됨.
- 현재까지 여당 연정 세력만 개헌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코로나19로 야당 및 시민사회와의 충분한 논의는 이루어지지 못하는 상황임.
- 연정 세력 중 군과 독립운동 관련자, 동부 지역 파워엘리트는 여전히 정치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임.
- 향후 코로나19가 얼마나 지속될 것인지에 따라 개헌 및 정치구조 변동 등의 상황은 달라질 것으로 보임.
2) 토론 내용
□ (장철복 상무) 히락을 주도하는 특정 세력 혹은 집단이나 지역이 있는지와 이슬람 세력은 히락과 어떤 관계인지 궁금함.
- 튀니지에서 시민혁명의 주체는 이슬람 세력과 이를 중심으로 한 시민사회였으나 알제리에서는 베르베르인 출신의 노조, 소수 정당 등이 중심 세력임.
* 알제리 내에서 베르베르가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노조나 정당의 영향력이 크다고 할 수 있음.
- 히락 기간에 폭력사태는 없었으며, 주도 세력은 이슬람과는 거리가 있음.
□ (김은비 교수) 포스트 히락 시대에 대한 전망이 궁금함.
- 알제리가 시민 사회로 가는 과정에서 이슬람 및 아랍의 색채가 옅어지고 베르베르의 영향력이 점차 강화될 것으로 예상됨.
- 베르베르인 중에 아랍어를 모르는 이도 있고 이슬람에 대한 의견도 서로 달라 이슬람이 알제리 사회를 하나로 모을 수 있는 구심점이 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임.
- 반면 마그레브 지역에 베르베르인이 사회 및 경제 영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어서 마그레브 지역의 아랍화를 강화하는 정책이 진행된다면 이에 대한 저항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됨.
□ (남옥정 연구교수) 히락 운동이 아랍의 봄과는 성격이 다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?
- 베르베르인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명절은 우리나라 구정에 해당하는 ‘옌나예르’이며, 2016년부터 공식 명절로 인정을 받게 되었고 2018년 베르베르어가 공식어로 사용되기 시작했음.
- 히락은 베르베르 명절 및 언어 인정 등과 함께 베르베르인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과정으로, 사회 전반의 민주화를 추구하는 아랍의 봄과는 다른 양상이라고 할 수 있음.
□ (최영철 교수) 군부가 히락 세력의 집회에 대한 강압적이지 않은 통제를 행사하고 있는 배경이 궁금함.
- 알제리는 이집트나 튀니지와는 다르게 비폭력 평화 운동을 전개하고 있음. 이것은 1990년대 군부와 이슬람 세력 간 무력 충돌에 따른 역효과를 학습하게 된 결과라고 할 수 있음.
* 당시 오랜 저항 과정에서 국가 전체가 피폐해져 갔으며, 피해자 및 국민의 트라우마는 지금도 남아 있어 정부와 국민 모두 자국 내 물리적 충돌이 발생하거나 이슬람 세력이 득세하는 것을 상당히 경계하고 있음.
□ (장지향 센터장) 2011년에 알제리에서 아랍의 봄이 일어나지 않은 이유가 기존의 모든 권력 및 언론, 정치인에 대한 신뢰가 낮아 시민사회의 저항으로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팽배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음. 그나마 알제리 시민이 신뢰하고 있는 기관 및 세력은 어디인지?
- 정부와 관련된 기관에 대해서 국민의 신뢰는 거의 없으나 시위 세력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신뢰와 국가 변화를 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있음.
- 반면 과거 알제리의 독립을 주도했던 세대는 부패했다는 인식이 청년 사이에서는 팽배하며, 기득권에 대해서도 신뢰가 낮음.
- 최근 알제리 정부는 20대 장관을 기용하여 청년의 신뢰를 회복하고자 하는 등의 변화를 추구하고 있음.
□ (유광호 전문연구원) 노무현 대통령의 알제리 방문 이후 어떤 종류의 한국 기업이 진출하게 되었는지 궁금함. 또한 알제리가 지금까지 외국인 투자에 대해 보수적인 태도를 이어오고 있는데, 외국인 투자지분 49% 제한조치가 정치 세력이 바뀌거나 새로운 대통령이 들어설 경우 완화될 가능성이 있는지도 궁금함.
- 노무현 대통령 이전에 일부 대기업 중심으로 진출했으나 이후 건설사 진출이 이루어졌음.
- 외국인 투자제한조치는 새로운 정권이 들어선다 할지라고 바뀔 가능성이 작음.
- 모로코와 달리 알제리는 식민지 경험으로 인해 프랑스에 대한 피해의식이 큰 반면 상대적으로 아시아인에 대해서는 호의적인 측면이 있음.
- 알제리 기업과 장기적인 신뢰관계가 구축되면 현지에서 사업을 추진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음.
□ (박현도 교수) 현재 프랑스와 알제리의 관계가 궁금함.
- 프랑스와 알제리는 애증의 관계라고 할 수 있으며, 알제리인은 프랑스인을 상당히 좋아하면서도 싫어하는 양가감정을 보임.
- 프랑스인은 알제리 시내에 돌아다니기 힘들 정도로 두려움을 가지고 있으나 정치 및 경제적인 측면에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음.
- 알제리 엘리트층 중 프랑스 이중국적을 보유하거나 프랑스에서 교육을 받은 비중이 높게 나타남.
□ (엄익란 교수) 신세대 정권 교체 가능성, 새로운 세력이 정치권으로 들어섰을 때 역학 구도에 대한 전망이 궁금함.
- 알제리 대통령 출마조건은 종교적 의무를 행하는 무슬림, 프랑스 이중 국적자일 경우 프랑스 국적을 포기할 것 등이 있음.
- 최근 프랑스 국적의 알제리인이 SNS를 통해 알제리 청년층으로부터 높은 지지를 받은 사례가 있으며, 알제리 대통령 선거에 도전하기 위해 프랑스 국적도 포기하고자 하였음.
- 새로운 세대가 정치권을 바꾸고자 하는 움직임은 있으나 현 제도 내에서 쉽지 않아 실질적인 권력교체로 이어지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것으로 예상됨.
□ (성일광 연구원) 알제리에서 사업하는 분을 만나면 현지의 사업환경이 기업 친화적이지 않다는 지적이 많은데, 혹시 이것이 사회 및 문화적 요인에 의한 것인지?
- 알제리 사람들에게 의리가 상당히 중요한 개념이나 우리 기업의 경우 단기적인 수익이나 성과에 중점을 두기 때문에 양측의 접근법이 다르게 나타남.
- 알제리 기업과 신뢰관계를 한번 구축한다면 다양한 사업 기회가 주어질 것으로 보임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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